달방낮술에 굳이 안주가 필요하겠소만한 접시 물김치나마 홍주 한 병 마주했으니남도의 객수쯤은 먼바다 뱃고동이오지금쯤 고향에도 봄비는 내릴 터……아, 뭘 하시오? 잔 비었소
미안하다또다시 너희들을 가두었구나견고한 벽과 네모진 사진틀 속에아직도 너희들을이승의 음계에 붙들어 놓고 있구나
명부(冥府)에 띄우는 편지오문평님, 자식이 둘이나 있었군요세상에 이름조차 알리지 못한그런데 혹시, 그쪽 세상에서 묻지는 않나요?그때 왜, 어린 우리가 죽어야 했냐고
속수무책강을 건넌 봄빛은 막무가내입니다일사천리로 꽃을 밀어 올립니다 허겁지겁 환영의 아치문을 세웠으나이미 늦었습니다안방까지 다 내어주고 말았습니다
봄나루마침내 봄빛이 나루에 닿았습니다서둘러 뛰어내린 어린 매화들이 재잘재잘 하얀 머플러를 날리고한발 앞선 산수유 선생님은 하마 이만큼서 어서 오라, 노란 손짓입니다
겨울동화유리성 셋째 공주님이 이제 막 잠들었나 봐요혹여 깰세라흰 띠 고깔모자 쌍탑은 파수를 보고얼음 호수 건너던 싸락눈도 가만 나래를 접네요
도시의 밤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계산되고 규격화된저 도시의 밤이 무섭다어둠이 오면 재빨리 불빛 변신을 하여완벽한 대칭의 알리바이를 잉태하는
우담바라풀잠자리가 한 점 인연을 이승에 놓았습니다그 자리에 피어난 저 지고(至高)한 생명의 외경(畏敬)우담바라는 먼 데서 피는 꽃이 아닙니다
저승꽃이게 무슨 꽃이냐, 친구에게 물었더니꽃이 아니라 버섯이란다그런데 죽은 나무에서만 피는 것이니저승꽃이라 불러도 되겠다, 하였다일리가 있는 말이었다